내가 미국에 살게 되기까지 (1편) /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갑자기 왜 미국을?

미국에 오면 많은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다양한 사연과 다양한 꿈을 가지고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어릴 때 유학으로 혹은 가족이 함께 이민을 통해 이 땅을 밟는다.

가만있자…그럼 유학도 이민도 아닌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왔는가? 무언가를 대단히 이루기 위해서? 미국에서의 거주가 어떤 미래에 성취하고자하는 목표에 필요한 일이라서? 아니면 그냥 단지 한 번 살아보고 싶어서? 무언가 단단하고 분명한 것이 내 안에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것은 사실 굉장히 구체적인 계획도 아니고 내가 이루거나 해낼 수 있는것이라 확신을 가졌던 것도 전혀 아니었다. 이런 것은 콜링이라고 하는걸까…? 어떤 마음이 일기 시작했는데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상황도 그렇게 흘러갔던…정신 차려보니 미국에 와있던 나.

나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시간을 내어 몇 번의 선교캠프에 참석했었는데 대부분은 강대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이었다. 케냐에서 봤던 젊은이들의 텅빈 눈, 필리핀에서 마주했던 열악한 상황. 나에게 이들에게 나누어줄 무엇이 있을 때 나누고 돕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캠프 안에서 나도 모를 우월감에 젖어 돕고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작은 성취감까지 느꼈더랬다. 하지만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은 잠시 뿐 그 도움이 끝나면 같은 환경, 같은 문제 속에 그대로 머물게 될 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해서 하는 선행은 보기에 좋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무기력하게 하고 자립을 막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차츰 무엇이 이들을 진정으로 돕는 길일까? 돕는다는 것이 실제로 계속 지속될 수는 있는 것인가? 내가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이들 자립할 수 있고 나는 어떻게 나는 그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들 속에 ‘비지니스선교사’ 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이 단어의 정의를 똑바로 내릴 정도로 잘 알지 못한다. 의미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 단어가 먼저 마음에 콕 박혀 이렇게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래, 내가 비지니스의 주체가 되어서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복음도 전하면 이들을 영적으로도 살리고 자체적인 경제가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게 말처럼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뭐,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생각인데다 아주 멋진 일인 거 같았다. 흠, 가만있자….근데 이들과 어떻게 소통을 해야하지? 그래…내가 스와힐리어, 따갈로그어 다 할 수 없지만 영어를 할 수 있으면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있으니까 영어를 먼저 해야겠네? 근데 그냥 말만 통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와 사회 규범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지… 하려면 잘 해야겠지… 왜냐면 나는 돕는다고 하는 일이 그 나라의 상황을 잘 모르면 되려 기존 규범을 해쳐버릴 수 있는 거니까 (Toms 슈즈가 1개 구매 시 1개를 아프리카에 보내면서 그 나라의 로컬 신발생산업자들이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우버가 우리 나라의 택시업계를 위협했던 것처럼). 근데 영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영어 공부를 해야지. 근데 영어를 잘해도 다양한 외국 사람들과 협업해보지 못하면 나는 말만 잘해서는 제대로 할 수 없을 거 같은데. 그래! 나는 영어도 공부해야겠고 해외에 나가서 여러 나라 사람들하고 일도 해봐야겠다! 거기 까지였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어떻게인지도 모르지만 굉장히 막연하게 언젠가 그렇게 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우리 언니가 형부랑 미국을 간다고 했다. 형부는 한국 군인인데 나라의 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서부에 있는 Monterey 라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나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야근을 밥먹듯이 할 때인데 그 소식을 듣고서는 먼저는 울 언니가 다른 나라로 멀리 가는 게 아쉬웠고, 두 번째는 와- 나도 놀러가서 좀만 살다오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던 차였다. 그랬는데…생각만 했는데 어느 날 나는 ‘직장인 유학’ ‘직장인 어학연수’를 폭풍 검색하는 나를 발견한다. 하하하 검색은 뭐- 해볼 수 있자나?

그러던 중 엄마랑 통화 중에 무심결에 내뱉은 말.

“엄마 나 어학연수나 한 번 가볼까봐” (‘어머 미쳤네 왜 지금 이 얘기를 하구있어, 내가… 어뜩해’)

엄마의 답변이 더 가관이었다.

“그래, 너 나중에 시집가고 애낳고 그러면 그럴 여유 절대없어. 마음 먹었으면 당장 가라!” (‘눼…?’)

그렇게 엄마의 심적 추진을 받은 나는 조금씩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도록 좀 더 적극적인 검색을 시작한다. 필리핀이 싸고 좋은 거 같았다. 거기서 살면 더운 나라에서 휴양하는 기분으로 리조트에 있으면서 영어 공부도 하고 그렇게 실력이 좀 쌓여서 언니가 있는 미국에 가면 뭔가 또 할 게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그 해 말이 되어 나는 필리핀에 한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등록하기로 하고, 연말 송구영신 예배에 간다. 바로 다음 날이 돈을 송금하기로 한 날이었다. 근데 송구영신 예배에 가서…나의 모든 계획은 갑자기 사라지고 나는 뉴욕을 가기로 결심한다.

(2편에 계속….)

Leave a comment